사랑하는 이가

 밤마다

 새벽마다 이슬을 밟네요.

 정갈한 음식에

 잘 다려진 옷과 반짝이는 구두

 한동안은 감동하였지요.

 아마도 새벽 약수를 길러다 하는 음식이라고

 그니의 얼굴이 해당화보다도 더욱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더군요.

 진실한 사랑이 느껴져

 하루하루가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오.

 간밤에 기름진 음식이 사단이 될 줄은 

꿈엔들 생각하지 못했다오.

 참을 수 없는 배탈이 큰 사단을 만들고 말았다오.

 뒷산 약수터와 동떨어진 짙은 숲속으로 사라진

 그니의 모습이 머리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말았다오.

 숲속 입구에서 터져버린 괄약근의 무기력에 주저앉지 않아야 했다오.

 하루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두렵기만 하다오.

 옷과 구두를 엉망으로 만든 채 집으로 향합니다.

 잘 차려진 음식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니의 화사해지는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습니다.

 가슴을 저릿하게 울리던 음성이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걱정하는 말을 뒤로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오.

 가슴 속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느 울화로 잠을 이룰 것 같지 않지만

 새벽에 깨어나려면 억지로라도 자두어야 합니다.

 그니는 진 새벽 소리없이 일어나 어둠속으로 사라집니다.

 가슴이 발작을 일으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오.

 몇 번이고 되돌아가야 한다고 되뇌이지만 제멋대로의 다리가 도둑괘이 흉내를 냅니다.

 그니는 숲의 입구에 멈춰선 채 잠시 망설입니다.

 허둥대다 밟은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숲의 생명들을 깨우고 맙니다.

 몸을 숨긴 나무의 잔가지가 경련을 일으킵니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옵니다.

 불현 듯 되돌아본 집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유령의 집처럼 괴기합니다.

 입안으로 흘러든 눈물이 혀를 태웁니다.

 그니의 한숨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왠지 어깨를 늘어뜨린 그니의 모습이 숲 깊숙이 사라집니다.

 이제 되돌아갈 집마저 잃었다는 생각에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뒤를 ?았다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안개 너머로 그니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의미를 아지 못합니다.

 이미 눈이 뒤집혀 그 의미를 알려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서 끝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뒤틀린 마음이 끝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단 몇일만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오.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

 초라하지만 무엇과도 버꿀 수 없었던 행복,

 그리고 가슴 가득 품었던 희망까지도

 모든 것이 숲속 악마의 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오,

 그니의 발 걸음이 천근처럼 보입니다.

 대낮에도,

 장정들도 꺼리는 서낭당 뒤쪽으로 향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허적허적 걸어갑니다.

 이미 터져버린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오.

 그니의 모습이 돌탑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그니를 만나고는 찾지 않았던 돌탑이 어느새 배로 늘어나 있습니다.

 평생의 반려를 보내 달라 쌓았던 7개의 돌탑 뒤로

 새로이 쌓은 돌탑들이 보입니다.

 그니만큼 키가 큰 7개의 돌탑이

 앞의 돌탑을 묵묵히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뭐해요! 어서 오지 않고요!"

 속이 답답합니다.

 돌탑들이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만 같아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받아요. 오늘부터 당신이 새로운 돌탑을 쌓으세요."

 엉겹결에 받아든 돌덩이가 바위처럼 가슴을 짓누릅니다.

 "무엇...을 빌었소?"

 곁을 스쳐가는 찬바람에 겨우 묻습니다.

 "흥! 몰라도 되요. 마음이 깨끗해지게, 의심하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비세요."

 그니는 멍한 서방을 버려두고 약수터로 향합니다.

 여전히 멍한 귓속으로 화난 음성이 들려옵니다.

 "당신만한 돌탑이 완성되면 바보 2세를 보게 될 거예요."

 손안의 돌덩이가 갑자기 솜털처럼 가벼워집니다.

 "또 다시 옷과 구두를 엉망으로 만들어오면 쫄쫄 굶을 줄 알아요."

 그니는 선녀입니다.

 산신령이 바보에게 보내준 하나뿐인 선물입니다.

 돌탑을 천개쯤 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