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니라 해도 좋습니다.

 끝없는 나락으로 내달리는 시간의 굴레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무망의 늪에서 벗어나고픈 갈망이 그대의 곁으로 자꾸만 다가가게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 해도 좋습니다.

 그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대 곁에 머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긴 시간 닫아버렸던 말문이 열립니다.

 잃어버렸던 미소가 절로 피어납니다.

 무언가 하나쯤 모자란 사람과 같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삶의 질곡에서의 맹세는 너무도 허약했습니다.

 다시는 정이라는 것을 갖지 않겠다는 맹세는 간데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드러내보이고

 기대고 싶은 갈망이 저 깊은 속에 웅크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것이 세상의 조소와 비난을 부른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멈출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누군가,

 손을 내밀 때까지만 그대 곁에 머물겠습니다.

 아무래도 돌았나 봅니다.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괴로워합니다.

 이 시작이 또 하나의 상처가 될 것을 너무도 잘아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