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랑스러운 천년 송의 후예입니다.

 비바람에 꺽이지 말고 고고하게 자라라고

 천년의 가르침이 나이테 유전자 속에 녹아 있습니다.

 가르침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처녀림을 침법한 투박한 손에 머리칼이 잘리고서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뿌리를 지탱하던 바위가 구멍이 뚫리고 부서져

 밧줄에 매달려 끌려나와

 몸통이 휘고 팔이 꺽이고 비틀려 곱사등이 되었습니다.

 가지마다 철사줄이 묶여서야

 천년의 자부심이 산산히 부서져 흩어짐을 알았습니다.

 진열장 너머에서 탄성을 자아내는 인간들의 시선이

 사지를 뒤트는 고통보다 더 아프게 합니다.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허리를 펼 수 없습니다.

 만신창이 몸에 양분을 공급하려해도 뿌리를 뻗을 수가 없습니다.

 뒤틀린 모습 어디에도

  면면히 이어온 천년의 자부심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