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나리면

 오래 묵은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들을 지나 산으로 가야겠다.

 가는 길에 작은 개천에 들러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에

 너덜거리는 마음을 씻어내고

 깨진 얼음칼로 발 뒤축에 낀 세상의 찌꺼기를 긁어낸 뒤

 걸음을 재촉하여 동트기 전 산에 들어서면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한 나무가지에서

 눈 쏟아지는 소리 들리고

 산사의 새벽 독경 소리를 ?다보면

 마른 가지 밟히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눈 토끼를 만나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미소 짓다가

 뒤따라온 발자국과 함께

 시간이 정지되고 움직임마저 정지되어

 모든 생명이 긴 잠에 빠져있는 눈의 골짜기를 지나

 주검마저 얼어붙은 얼음의 성으로 가야겠다.

 얼음성 정원의 한 구석에 석상으로 얼어붙어 지내다

 오랜 세월 뒤에 불어온 남풍에

 얼음 성벽이 금이 가 부서지고

 작은 조각들이 해동되어 성을 박차고 나가면

 늦은 종종 걸음으로 봄을 맞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