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바로 내일 아침이었다

수경은 몇 분전, 마침내 야영장을 예약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전화를 끊고 나자 곁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일본인 유학생 요요가 불쑥 어젯밤에 악몽을 ?다며 꿈 이야기를 꺼냈다.

 "너 여행 가지 마라 여자끼리 가는 건 위험해.그것도 외국에서 실종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래?

나 간밤에 악몽 꾸고 진짜 무서웠어.

여행간 명자 네가 시커먼 땅속에 묻혀 있었거든. 잘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땅속에 묻혀 있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불에 달궈진 바늘이 등뼈를 뚫고 들어가는 듯한 오싹함이 일었다. 여행을 앞두고 불길한 이야기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꿈은 개꿈이라며 요요의 꿈 이야길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하긴 내가 꾼 꿈은 한 번도 들어맞은 적이 없긴 해. 괜히 말했나? 미안.""

 요요는 하지만 그래도 꿈이......라면서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듣기 싫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요요의 헬멧을 툭 치며 렛츠고! 하고 소리쳤다. 요요는 투덜대며 시동을 걸었다.

 스쿠터는 미국 워싱턴 주, 메릴랜드 대학의 ESL건물을 지나 4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8월 중순의 후덥지근한 열풍이 얼굴을 덮쳐왔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더운 바람이 주위의 다른 모든 소리들을 집어삼켜 버렸다.귀가 먹먹해지고 숨쉬기가 곤란했다. 땅속에 묻히면 바로 이런 기분이겠지. 문득, 머릿속으로 땅속에 묻혀 비명을 질러대닌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사이드 미러로 8월의 뜨거운 하늘이 작게 보였다. 거울 속 하늘은 끝없이 꿈틀거리며 색깔을 바꾸고 있었다. 내일이 출발인데 비가 올까봐 기분이 나빴다.

 학업에 짓눌리다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낯선 도시를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비록 여자끼리지만 셋이라는 숫자가 주는 든든함 덕분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게 될 경우,남자를 사로잡는 각종 방법에 대해 수다를 떠느라 웃음보가 터질 지경이었다.